퇴 후엔 어떤 인생이 남아 있을까? 영화 <어바웃 슈미트>(2002년)를 보면 그 일면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미국 남부 대형 보험회사에서 40여 년을 근무하다 은퇴하게 된 슈미트 상무(책 니콜슨)의 퇴임 축연은 근사했따. 그러나 그의 마음은 아직 은퇴하지 못했다. 은퇴한 다음날 아침, 책상머리에서 앉아 돋보기를 쓰고 우편물을 뜨어보던 슈미트, 급기야 회사에 가서 뭐 좀 도와줄 일 없느냐 말을 건넸다가 면박만 당하고 돌아온다.

게다가 아내가 뇌졸증으로 급사하고, 하나밖에 없는 딸마저 그를 거부했다. 그런데 그때 탄자니아의 어린이 '엔구두'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자신의 존재감을 회복한다. 엔구두는 슈미트에게서 하루에 77센트(1천 원)를 후원받는 어린이였다.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돈과 승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남자들이다. 그러나 인생을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일만하고 살아온 사람은 일이 끝나면 인생이 적막해진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한 사람은 일은 사라져도 사람이 남는다.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면 나보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을 조금 나눠 주면 그들은 더 행복해진다. 강지 기증을 통해 생명이 위대로운 사람을 살릴 수 있듯이, 마음과 생각의 기증(donation)을 통해서도 심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인생을 새롭게 열어줄 수 있다. 산을 오르는 자의 인생이 아니라, 산을 오르는 자를 돕는 셰르파(Sherpa)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풍요로워지는 인생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자신이 심은 나무들이 자라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 내가 도왔던 사람이 성장해 어엿하게 인생을 꾸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멋진 나무 한 그루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에 비할 수 없는 행복이다.

위대한 행복을 꿈꾸는가? 주변에 아직 뿌리를 든든히 내리지 못한 채 흙 속에서 묻고 있는 여린 씨앗과도 같은 인생이 있다면, 삶의 폭우에 유실되지 않도록 잠시 동안이라도 살포시 덮어줄 흙이 돼 보자.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내 인생의 한 부분을 기꺼이 나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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