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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tory.KR

꿈을 향해 도전하라

  - 할리우드 최초 한국인 미술 총감독 한유정 -

 

수많은 전문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세계 최고의 무대 할리우드, 그 중심에는 할리우드 최초 한국인 미술 총감독 한유정이 있다. 자신의 한국적 뿌리를 살리는 ‘한유정’이라는 이름을 고집하고, 동서양이 조화롭게 융화되는 문화를 직접 만들어 가며 자신의 이름을 할리우드의 그 화려한 이름들 위에 당당히 세우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한다면 꿈은 평생 가슴 속에만 머물러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면 꿈은 자신의 것이 된다.”

 

낯선 길에서 꿈을 그리다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핫 플레이스 ‘할리우드’를 누비는 미술 총감독 한휴정. 평범한 열여섯 살 소녀 시절부터 ‘무대디자이너’라는 꿈을 품고 오로지 그 꿈만을 향해 달려왔다.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던 ‘무대디자인’이라는 전공을 선택했고, 무대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연고도 없는 LA로 유학을 가는 모험을 택했다. IMF 시절 3개에 1달러 하던 햄버거를 얼렸다 녹여 먹으려 고픈 배를 채웠고, 학비를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동양인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루 2시간만 자는 강행군을 지속하면서도 이를 악물었고, 23시간 55분 동안 촬영현장을 지키고 있어도 5분을 비우면 물거품이 되는 냉정한 할리우드에서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갔다. 그녀에게 ‘할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할리우드에서 주어진 일은 무조건 해내야 했고, 잘해야 했다. 결국 그녀는 별들의 전쟁터인 할리우드에서 맨몸으로 부딪쳐가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실수에 기죽기보다는 이를 딛고 일어나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 애쓰고, 매사 철저한 사전 준비로 현실을 뛰어 넘어 꿈을 이루어냈다.

  한유정의 사전에 대충대충은 없다. 무보수 학생작품도 최선을 다하기로 정평이 나, 함께 일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시 작업하고 싶어 했다. 학생 신분에도 불구하고 LA 올 코케이션 영화 <러브 Love>(1999)의 미술총감독으로 발탁, 영화계에 입문했다. <리틀 히어로 2 Little Heroes 2>(1999)로 ‘세트를 최상으로 만들어내는 미술감독’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맨 프럼 엘리시안 필즈 The Man From Elysian Fields>(2001)로 고등학생 시절 우상이던 앤드 가르시아를 비롯, 믹재거, 제임스 코번 등의 대가들과 함께 작업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세상을 가슴에 품어라

  어떤 상황에서도 꿈이 있었기에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패나 실수를 좌절이 아닌 “도약의 계기”로 삼았다.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되, “왜 그랬을까?”보다는 “더 철저해지자”고 마음먹었다. 자책하는 대신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고 격려하는 편을 택했다. 불합리한 처사에는 더욱 철저한 기록과 데이터로 응수했다. 그 결과 한유정은 함께 작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또 다시 같이 작업하길 원하는 미술총감독이 됐고,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열망하는 할리우드의 중심에서 당당히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한유정은 이 모든 도전과 성취가 ‘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꿈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꿈보다 먼저 뛰어야 했고, 꿈보다 먼저 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다고 말이다. 항상 자신의 10년 후를 내다본다는 그녀는, 자신의 트로덕션을 세워 직접 제작에도 뛰어드는 등 지금까지도 계속 새로운 꿈을 향해 뛰고 있다.

 

  “젋음 하나면 족하다. 실패가 따르더라도 젊음이라는 무기로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더 이상 세상이 정한 한계에 자신을 옭아매지 말자. 세상을 가슴에 품고, 자신을 과감히 던져보라. 내가 해냈는데, 당신이라고 못하란 법 있겠는가!”